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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05 종교에 대해 (박진영)
괜찮다 싶은 펌글2007. 12. 5. 09:46

사람들이 나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무교라고 말한다. 나는 원래는 기독교인이었다(지금도 아버지는 장로님이시고, 어머니는 권사님이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교회에서 나는 열심히 기도했고, 찬송했으며, 성경공부도 빠지지 않았다. 어렸던 나에게 성경은 당연히 신화가 아니라 역사였고, 하나님은 신이 아니라 실존인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워 보였다. 그만큼 기독교는 나의 몸 속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본 장면 하나가 나를 이단아로 만들었다. 큰 불상 앞에서 한 부부와 어린 자녀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저 집에서 태어났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 집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는 종교 문제가 우연에 의해 결정되다니.

혹 어떤 사람들은 '나는 괜찮아. 난 부모님이 시켜서 믿은 건 아니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럼 난 묻고 싶다. 어떻게 해서 믿게 되었냐고. 우연히 성경책을 읽어보고 그 속에 빠져들었다고? 그럼 그때, 그 자리에 성경이 아니라 불경이 놓여 있었다면! 우연히 지나가다 교회를 보고 들어가고 싶었다고? 그럼 그 자리에 교회가 아니라 절이 있었다면! 꿈에 예수님이 나왔다고? 그럼 부처님이 나왔다면!

아무리 말해도 역시 답은 똑같다. 그것은 바로 '운', '우연', 최고로 좋게 말해야 '운명'일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운명적으로 믿게 되었다는 것. 물론 인생의 모든 것이 다 그런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종교 문제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 9단인 이창호 기사가 만약 어렸을 때 장기판을 가지고 놀았다면?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창호씨는 장기 9단, 나는 소리꾼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종교에 비해 상당히 이성적인 부분들이다. 즉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고, 하기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세상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종교는 이런 것들과는 달리 내 모든 사고와 판단을 지배한다. 나의 전생, 나의 출생, 나의 가치관, 나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까지 설명을 해준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운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그 수많은 종교 중에 어느 것이 진짜 맞는 얘긴지 어떻게 알겠는가? 만약 그 중에 하나가 정말 사실이라면 나머지 종교를 믿고 매일 열심히 기도했던 다른 종교인들은 얼마나 운이 없는 것인가? 최소한 여러 개의 종교를 다 검토해 보고 본인의 판단으로 골라서 선택했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운으로, 아니, 좋게 말해 이끌림으로 믿게 되었는데 죽고 나서 보니 다른 종교가 맞더라면, 아니면 모든 종교가 다 틀렸다면 얼마나 억울한 것인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으로 자라 종교전쟁에 나가서 회교 신자들을 죽였는데 죽고 나서 보니까 회교가 맞는 것이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괴로울까?

아무튼 이러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혼잡해지자 나는 기독교 교리 자체에 대한 여러 가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눠 천당, 지옥으로 보낸다는 게 말이 되나? 대부분의 사람은 착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닌, 그 사이 어디에 해당되지 않나? 그럼 아주 착한 사람과 조금 착한 사람이 같이 천당에 간다면 아주 착했던 사람은 억울하지 않을까? 너무나 가난해서 빵을 훔쳤다면 그것도 다른 죄와 똑같이 처벌되나? 그 사람이 부유한 집에 태어났다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도 훔치지 않았을텐데? 가난하게 태어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 아닌가?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서 훔칠 필요가 없게 만들고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나 훨씬 더 훔치고 싶게 만들고...

이런 생각들로 방황하던 중 나는 결국 기독교를 버리게 되었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절대적으로 믿었던 기독교를 버린다는 게 너무나도 겁이 났지만 이런 회의들을 덮어 놓고 계속 기독교를 믿는다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또 어떻게 보면 나에게 이런 회의가 들게 만든 것도 하나님일 테니까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 나는 훨씬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일요일날 교회를 안 가니 시간이 남았고, 정신적으로도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없어져 자유로웠다. 하지만 힘든 점도 있었다. 내가 힘들고, 지치고, 두려울 때 기도할 수가 없다는 것. 무교를 선언한 사람이 힘들 때만 다시 하나님을 찾는 건 너무 치사한 행동이었기에 나는 양심상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옛날엔 그럴 때 열심히 기도하고 나면 참 마음이 편해졌었는데, 더 이상 난 그럴 수가 없었다. 겁나고 두려웠지만 어떻게든 혼자 이겨내야 했다.

이렇게 10년 가까이 지내다가 나에게 다시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생겼다. 2집 앨범 '청혼가'를 마치고 3집 앨범 작업을 할 때였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아무리 열심히 뚱땅거려도 도무지 곡이 써지질 않았다. 오선지에 콩나물을 그리고 다시 찢길 몇십 번.

그래도 도무지 마음에 드는 곡이 없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의별 짓을 다해 보았다. 여행도 가 보고 다른 가수들의 콘서트에도 가보고, 내 자신이 썼던 음악들을 다시 들어 보고, 술에 취해서 곡을 써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통하질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곡은 써지질 않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저 위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그리고 이 때까지 내가 만든 모든 음악, 아니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이 나의 능력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 저 위의 누군가가 나에게 내려준 것임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의 신도 아니고, 이슬람교의 신도 아닌, 그냥 신이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컨트롤하는 신, 행운과 불운을 결정하는 신. 하지만 나는 이 신과 나 사이의 그 어떠한 형식과 교리도 거부했다. 대부분의 종교란 것이 신과 나 사이에서 다른 한 인간이 우리에게 해설을 해준 것 아닌가? 물론 그 인간은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선지자라 하더라도 신 본인이 아닌 이상 신의 섭리와 의중을 완벽히 전달하고 해석했을 수는 없다.

문득 모든 종교들이 서로 다른 것이라기보다는 그 해설자의 성향과 개성에 따라 차이를 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수십 명의 사람들을 눈을 가린 채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한 후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각자 만진 부위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세상의 모든 해설자들에게 반기를 들고 그 사람들을 제외한 채 직접 신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편의상 이를 진영교라 명명했다.

진영교의 교리는 두 가지 뿐이다.
1. 나에게 내려진 모든 축복에 감사한다.
2. 나보다 축복을 덜 받은 사람들을 돕는다.

첫째 교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나의 능력이라 믿었던 모든 부분들이 나의 능력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데서 시작된다. 모든 게 나의 능력이었다면, 왜 어떤 때는 1분에도 곡을 쓰고, 어떨 때는 한 달 동안 한 곡도 못 쓰는 것인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곡이 안 써질 때는 죽어도 안 써진다. 그래서 내가 곡을 한 곡 썼을 때, 가사를 한 줄 썼을 때, 좋은 신인 가수를 발굴했을 때, 공연을 멋지게 마쳤을 때,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결혼을 했을 때, 나는 항상 신에게 감사했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다쳤을 때에도 죽지 않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것보다 더 안 좋았을 수도 있었음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렇게 감사하기 시작한 후 내 일은 더욱더 잘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신은 고마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 참고로 감사의 방법은 고마운 일이 있을 때마다 머리 위의 하늘을 수직으로 올려다보며 '감사합니다'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물론 눈앞에도 하늘은 있지만 머리 위의 하늘이 거리상 가장 가까우므로 성의를 좀 들여서 반드시 머리 위의 하늘을 보며 해야 한다.

두 번째 교리는 첫 번째 교리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렇게 매일 하늘에 대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살던 나에게 어느 날 굉장히 민망한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또 '감사합니다'라고 하는데 위에서 누군가 나를 괘씸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일 감사할 일들이 많으면 너도 날 위해 뭔가를 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말 뒤에 '그래서 저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서야 신이 내려준 축복들이 날 위해 내려준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다른 일을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내가 그 일들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내게 축복이 내려지지 않을 것이라 느꼈다. 그 후로 난 지금까지 그 일들을 하려고 애쓰며 산다. 물론 아직도 많이 모자라지만...

적어도 종교를 믿는 종교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에 합격하게 해 달라고, 회사에서 승진하게 해 달라고, 축구 시합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사업이 번성하게 해 달라고. 이런 기도는 기도 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지 않은가? 세상에는 우리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못 가진 사람도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잊어 버린 채 우리만 더 가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건 분명 종교의 본뜻을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가진 것보다 더 갖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이것을 나보다 못 가진 사람과 나눠 쓸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정말 참 기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근본만 똑같다면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heeszzang